얼마 전 정보통신부 SW 진흥단이 SW진흥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이를 통해 국가기관의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사실상 하도급이 금지 될 것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현실적 여건은 이러한 법안이 과연 효력을 가지고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SW 업계에서의 하도급 관행이 수 많은 문제를 만들어 왔기에 기본적으로 환영할 수 밖에 없는 심정입니다.
하지만 우선 이 법안의 실제 효력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들부터 살펴 보도록 하죠.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들
우선 국가 기관 발주처의 SW 담당 인력이 하도급 금지를 꺼릴 수 밖에 없습니다. 소수의 인력이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발주 및 관리해야 하는데, 대기업을 중간에 끼우고 하도급을 주지 않으면 발주처 인력이 모든 관련 업체와 계약을 진행하고, 그 이행 내역을 관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발생하여 참여 업체간 책임 소재의 공방이 이루어질 경우, 발주처의 담당 인력은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잘못에 기인하지 않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꺼릴 수 밖에 없습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공공 사업의 경우 금액은 크지만 마진율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자사의 인력들로 모든 개발 인력을 충당하게 되면 수지가 맞지를 않습니다. 하도급 상황에서는 PM급 인력 한 두 명만 파견하고 나머지 인력을 저임금의 외주 인력으로 커버하여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하도급을 주지 않을 경우 이러한 구조는 불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중소업체 역시 어느 정도 어려운 점이 생깁니다. 위에서 말한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발주처 담당자에게 중소 기업의 브랜드 파워로 영업을 진행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불합리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대기업의 우산 밑에 있을 경우 기업 존속에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 흐름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적인 솔루션을 개발한다는 것이 한국 시장에서 너무 힘들다는 것도 어려운 점입니다.
어렵지만 그래도 바뀌어야 하는 이유들
이러한 어려운 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하도급 관행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죠.
우선 한국 시장의 특징은 소수의 대기업이 거의 모든 SI시장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수 많은 하청 업체에게 도급 형태로 나누어 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다음의 차트가 이를 한 눈에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구조는 다양한 문제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림 1 : 상위 3개 업체(삼성 SDS, LG CNS, SK C&C)와 타 업체들간의 매출 비교 (출처 : 경영과 컴퓨터 2006년 10월호)]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 업체간 계약의 불공정성일 것입니다. 대기업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가격을 후려치고, 중소기업은 부족한 영업력과 브랜드 파워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수행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게다가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렇게 후려친 금액마저 제대로 건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하도급이 주로 이루어지는 SI를 하지 않고 전문적인 패키지나 솔루션을 독자 개발한다면 좋겠지만, 거의 모든 패키지 시장이 고사해버린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길을 꾸준히 지속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최저가 낙찰이라는 무지막지한 방식입니다. SW의 기본적 속성인 기술 집약적인 정신 노동이라는 특성을 무시한 채 철저하게 저비용만을 목표로 계약이 진행되니,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가격을 후려 칠 수 밖에 없고, 중소 기업은 더더욱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 모든 비용적 부담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는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은 사업 자체의 품질에 문제를 가져 올 수 밖에 없으며, 계약 이행이 부실해 지는 등의 문제를 가져옵니다.
하도급 하에서 개발자의 미래는 없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는 내용입니다만, 저는 현재의 하도급 관행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
SW 개발자의 커리어 패스를 막는다”라는 점입니다. 중소 기업에서 근무하는 개발자의 경우 저비용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빨리빨리 일하고 손 터는 방식부터 배울 수 밖에 없습니다. 창의력을 발휘해서 더 나은 방식을 찾기 보다는, 기존의 방식으로 최대한 빨리 ‘주문 받은 대로’ 돌아가게만 해 주고 나갈 뿐인 것이죠.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실력을 꾸준히 향상시켜 경력을 쌓아 훌륭한 아키텍트로 성장한다? 이 환경에서는 그저 꿈 같은 일일 뿐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오랜 기간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기술을 닦으면 어느 시점에는 인정 받는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대부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일 때쯤에는 기술 영업으로서 일하며 개발에는 손 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어떻게든 자기 계발을 하고, 진보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이 진정한 개발자의 자세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그것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개인의 의지만 강요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또한 대기업에 입사한 사원 역시 그다지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코딩을 하고, 습득한 기술을 실전에 적용하며 연마해야 할 시기에 이들은 외주 관리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여러 가지 교육을 받기는 합니다만, 이를 제대로 실전에 응용해 볼 만한 기회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게 되면 접대를 배워야 하고, 사람들 비위 맞추는 것을 우선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면이 꼭 나쁜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훌륭한 엔지니어로 성장해야 할 중요할 시기를 놓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학생들의 SW 업계 진출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답답한 현실이라는 것이 명백하니까요.
마치며
현재의 갑을병정.. 으로 나가는 다단계 하도급 관행은 위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공공 기관의 사업이 기본적으로 세금으로 수행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SW 사업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도 꽤 큽니다. 결국 더 많은 세금을 필요로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의 관행을 지속하면서 SW 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SW 개발자의 미래가 없는데, 어떻게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정통부 법안이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